특정 인물, 매체, 집단 등에서 미리 선택하고 추천한 제품을 소비하는 큐레이터 소비 현상이 주목 받고 있다. 소비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큐레이터 소비의 의미와 기업의 대응 방향을 생각해 본다. 질문 1) ‘마당 깊은 집’, ‘백범 일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다음 책들의 공통점은? 모두 베스트셀러다. 또한 모두 ‘느낌표’ 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책들이다. 결국 공통점은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의 소개를 통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이다. 질문 2) ‘디알북’을 아십니까? ‘디알북’ 역시 책 제목이다. 출판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벌써 2판을 찍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이다. 디알북의 저자는 평범한 네티즌이다. 저자는 도표화, 도식화된 컨텐츠를 연재 형식으로 사이트에 올려왔다. 이 게시물을 관심 있게 지켜본 한 네티즌의 적극적인 추천과 수많은 눈팅족들의 열화 같은 리플 때문에 세상에 책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출판된 이후에도 커뮤니티 회원들이 자발적인 번개 모임 등을 통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질문 3) 질문 1과 질문 2의 공통점은? 둘 다 책에 관련된 에피소드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과거에는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는 주체는 출판사였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책을 편집하고, 인쇄하는 등 책이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주체는 출판사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책을 홍보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출판사도 아니고 저자도 아니다. 바로 방송 프로그램과 네티즌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마치 여행사의 가이드처럼 방송 프로그램과 네티즌들이 소비자들에게 소비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개인 혹은 특정 매체가 소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소비자는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평가하고, 추종하는 소위 큐레이터 소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소비 패턴 변화와 큐레이터 소비 큐레이터는 박물관 등에서 전시할 작품을 고르는 기획자를 말한다. 따라서 큐레이터 소비란 일반 소비자들이 특정 인물, 매체, 집단 등에서 미리 선택하고 추천한 제품을 소비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특히 이러한 소비 형태는 출판, 패션, 푸드, 여행, 문화 정보 등 라이프 스타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품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2004년을 화려하게 강타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기억할 것이다. 보통 엄청난 성공을 거둔 드라마는 뒤 따라오는 돈벌이 기회도 쏟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주인공이 입은 의상, 액세서리, 집안 구조 등은 숱한 화제에 오른다. 이후에 제품에 대한 입 소문이 나돌고, 주인공의 손길을 탔던 브랜드가 잘 팔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끝난 후 거리에는 여주인공이 즐겨 입은 스타일의 바지와 장신구를 한 여성들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그 옷들의 브랜드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예전과는 사뭇 다른 패턴이다. 단지 소비자는 ‘누구누구’ 스타일 그 자체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맹목적인 사랑이 점차 시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등장하는 브랜드 홍수는 소비자에게 혼란스러울 뿐이다. 게다가 이 브랜드나, 저 브랜드나 모두 비슷비슷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고민해서 내 놓은 브랜드가 소비자들을 골치 아프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이나 매체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소비자는 이를 수용하는 큐레이터 소비가 점차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큐레이터, 그들은 누구인가? 사실 이미 소비시장에는 적지 않은 큐레이터가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유형별로 보면 크게 프로패셔널 집단과 아마추어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 프로패셔널 큐레이터 프로패셔널 집단을 다시 세분해 보면, 직접 제품을 만드는 디자이너형과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스타형 및 전문 매체형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디자이너형은 자신이 직접 제품을 만들고,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유통시키는 기업형 큐레이터를 의미한다. 상당수의 외국 명품 브랜드와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가 이에 해당한다. 엄밀히 보면, 소비자는 이들을 사실상 하나의 기업으로 인식한다. 다만 이들 역시 패션 쇼 등을 통해 자신이 직접 제품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큐레이터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스타형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PPL과 유사한 형식이다. 이미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인물들이 특정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노출하고, 소비자들이 이에 열광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한 기업의 프로모션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은 스타가 제시하고 있는 패션, 음식 등 스타일에 관심을 두고, 그 스타일을 추종할 뿐이지, 제품 브랜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큐레이터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중 매체형은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미디어를 의미한다. 문화, 공연, 영화, 음식 등 특히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상품의 경우, 아직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대중 매체에 대한 막연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음식점이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것보다 훨씬 맛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유난히 동질성이 강한 우리나라 소비자의 특성도 대중매체가 강력한 큐레이터 역할을 수행하게끔 도와준다. 최근에는 잡지 매체도 큐레이터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한국의 잡지는 유명 브랜드를 소개하거나, 특정 인물 인터뷰 중심이었다. 하지만 최근 잡지와 카탈로그의 합성 형식을 띠고 있는 잡지(메갈로그)가 더욱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 잡지는 오직 무엇을 입고, 무엇을 사고, 무엇을 체험해야 하는 지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프로패셔널 큐레이터는 기존에도 소비자에게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크기는 하지만, 이미 대중에게 노출된 식상한 큐레이터(Old Curator)라 할 수 있다.
● 아마츄어 큐레이터 반면 아마츄어 큐레이터로 분류되는 유형들은 현재는 대중적인 영향력이 프로패셔널 큐레이터에 비해 떨어지지만, 미래의 잠재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세대 큐레이터(New Curator)다. 아마츄어 큐레이터는 준 스타/전문가형과 누리꾼형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준(準) 스타/전문가형이다. 준 스타형은 말 그대로 기존에 대중에 노출되지 않았던 평범한 개인이 어느날 특정 분야의 큐레이터로 떠오르는 경우를 의미한다. 작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몸짱 아줌마’ 가 대표적인 예다. 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인터뷰 기사를 계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주인공이다. 방송, 비디오 출시 등을 통해 몸 관리 분야의 아이콘으로 떠 올랐고, 30~40 대 아줌마들의 헬스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다음으로 누리꾼형이 있다. 누리꾼이란 네티즌의 순 우리말 표현이다. 누리꾼형은 어느 특정인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한국 특유의 사이버 문화를 의미한다. 앞서 디알북의 사례처럼 딱히 어느 특정인이 큐레이터라고 할 필요도 없이, 눈팅족, 리플족, 도배족 모두가 큐레이터다.
누리꾼 큐레이터를 주목하라 앞서 언급했던 큐레이터 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유형은 바로 누리꾼이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큐레이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유형의 큐레이터가 그 권위를 가질 수 있게끔 지원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즉, 최근에는 누리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만 비로서 진정한 큐레이터로 거듭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리꾼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네트워크 인프라와 누리꾼 특유의 생산성이라는 토대 때문이다.
포탈로 촉발된 게시판 문화가 블로그, 미니 홈피 등으로 진화하면서 정보의 파급력이 극대화 되었다. 컨텐츠를 퍼 나르는 순간, 수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인 미디어로 불리는 블로그는 미국의 미리엄 웹스터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 꼽혔다. 특히 네티즌들이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전문 블로그를 통해 관련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소비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결국 기존의 대중 매체가 독점하고 있던 소비 영향력이 블로그와 같은 개인 미디어로 점차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누리꾼들의 무궁무진한 컨텐츠 생산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소위 컨텐츠 세대라고 일컫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사진, 음악, 동영상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이들은 창조적으로 컨텐츠를 생산하고, 편집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데 무한한 만족을 느낀다. 오죽하면 ‘OOO 폐인’ 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기업의 대응 방향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큐레이터 역할을 독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유독 규모가 큰 기업을 신뢰하는 우리 소비자들의 특성이 기업과 소비자간의 달콤한 허니문을 유지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일반 소비자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은 좀 더 적극적으로 큐레이터 소비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
● 프로패셔널 큐레이터를 선점하라
프로패셔널 큐레이터의 가치는 그들의 희소성에 있다. 명품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전세계적으로 수 천명에 이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이들을 선점하여 자사의 보완자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마치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처럼 윈윈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휴대폰 제조업체의 경우,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최근 선보였다고 한다. 이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고, 그 디자인의 독특함과 화려한 색채가 돋보인다. 기업은 이 디자이너의 핵심 역량인 디자인 감각을 제품에 활용했다. 이와 더불어 패션 분야의 전문 잡지인 ‘보그’와 패션 전문 TV 채널을 통해 이 제품을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매체형 큐레이터의 권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 아마츄어 큐레이터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라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아마츄어 큐레이터는 고객인 동시에 협력자, 때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다. 물론 기업은 이들을 경쟁자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협력자가 될 수 있도록 발굴하고,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기업이 관행적으로 운영하던 단순한 모니터 요원을 양성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기존의 활동 내용 등을 파악하여 예비 후보를 선정한 후, 이들을 자사의 제품 개발에 참여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큐레이터 자신의 미묘한 욕구를 제품 개발에 반영하도록 하고, 이와 더불어 기업의 프로세스와 노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에 우호적인 큐레이터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BBA(Bush Boake Allen)는 전문적으로 향기 나는 양초를 판매한다. 이들은 고객들에게 사전에 샘플을 미리 보내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소비자들만으로 풀(pool)을 구성했다고 한다. 이렇게 선정된 큐레이터들은 BBA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끝까지 함께 한다. 또한, 최근에는 기업이 구축한 DB를 큐레이터들이 직접 접속해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 활동에 참여한 큐레이터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제품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제품의 홍보에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 넷피니언 리더(Netpinion Leader)를 관리하라 누리꾼 큐레이터의 경우, 그 특성에 따라 나름대로 분류가 가능하다. 온라인에서도 2:8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네티즌은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개진하기 보다는 아직까지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검색하거나, 가입된 사이트의 의견들을 살펴보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자신의 전문 지식을 뽐내고, 의견을 적극 표시하는 소위 넷피니언 리더(Netpinion Leader)들이 있다. 기업이 주목해야 될 대상은 바로 이들이다. 온라인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단순 도식화 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 네티즌이 자신의 궁금증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넷피니언 리더가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된다. 그 의견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는 경우, 논쟁이 벌어지는 데, 이 역시 주로 넷피니언 리더끼리의 논쟁이 주를 이룬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초기에 이들의 의견이나 비판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급속도로 퍼지는 이들의 의견을 다시 주워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충실히 추종해서, 온라인으로 퍼 나르는 나름대로 팬 층이 있기 때문에, 기업은 자사에게 유리한 구전이 촉발될 수 있도록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물론 수동적인 관리나 대응에서 벗어나, 이들이 지적으로 도전할 만한 신 개념을 기업이 먼저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등 선제적인 관리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전문성이 없는 명사의 입에 발린 찬사, 제품의 업적을 증명할 만한 업적 없이 무분별한 홍보는 오히려 누리꾼들의 좋은 표적이 되기 때문에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패션, 음식, 주거 등 주로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분야에서 주로 큐레이터 소비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점차 큐레이터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가전, 통신,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것이다. 미국의 ‘컨슈머 리포트’ 처럼 소비자의 절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큐레이터가 탄생할 날도 머지 않았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