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 부계홍씨 (缶林,缶溪洪氏) 부림홍씨 홈으로

1> 시조 : 홍 란[洪鸞]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부계(缶溪)는 경상북도 군위군에 속해있는 지명으로, 본래 삼국 시대의 부림현인데
고려 초에 부계로 고치고 1018년(현종 9)에 상주에 속하였다가 후에 선주(선산)에 이속하고
공양왕때 의흥에 속하였다. 지금은 군위군에 속한 부계면으로 남아있다.
 
부림홍씨(缶林洪氏)는 지명에 의하여 부계홍씨라고도 한다
시조는 고려조의 재상을 지낸 홍난(洪 鸞)을 시조로 하고 그의 6세손 홍좌(洪 佐)
1세조로 받들고 있다.
 그는 고려조에서 직장(直長), 동정(同正)을 지냈으며 후손들이 누대에 거쳐 토착 세거 해온
부계(缶溪)를 본관으로 삼아 계대하여 오고있다.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조선 성종때 대제학(大提學)에 오른 귀달(貴達)이 유명했다.
  그는 세조때 문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냈으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세워 이조정랑(吏曹正郞)에 올랐다.
 예종이 즉위하자 춘추관(春秋官)의 편수관(篇首官)이 되어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직제학, 도승지 등을 거쳐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왕명으로 [오례의주(五禮依註)]를 개정했다. 그후 대사성, 대제학, 호조 판서 등을 역임하고
연산군의 난정을 직간(直諫)하다가 좌천되었으며 자기의 손녀(언국의 딸)를 궁중에 들여
보내라는 왕명을 듣지 않아 장형(杖刑)을 받고 경원으로 유배가던 중 살해되었다.
  특히 그는 강직한 성품으로 부정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원만한 인품으로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 4형제 중 차남 언충(彦忠)은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承文院副正字),
박사(博士) 등을 역임하고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나 진안에 유배되었으나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직강(直講)에
복직되었으며, 글씨와 문장에 뛰어나 정순부, 이택지, 박중열 등과 더불어 당대의
[문장4걸(文章四傑)]로 일컬어왔다.

 학자 언국(彦國)은 귀달의 세째 아들로, 문장과 지조가 뛰어나서 사림(士林)의 존경을 받았으며, 딸의 미모를 탐한 연산군이 그의 딸을 입궁 시키라고 강요했으나 거절하여 거제로 유배되었다.
중종반정으로 석방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심했다.

 그외 인조때 우부승지를 거쳐 대사간을 지낸 호(鎬)와,
사간(司諫)을 지낸 그의 아들 여하(汝河)가 이름났으며,
현감(縣監)을 역임한 언승(彦昇)복창(復昌)이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부림홍씨(缶林洪氏)는 남한에 총914가구,
3,607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경북 군위군 부계면 대율동, 남산동

경북 문경군 영순면 율곡동

경북 군위군 부계면 동산동, 매곡동

경북 문경군 호계면 호계리

경북 군위군 부계면 고곡동

대구직할시 일원

경북 예천군 풍양면 와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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