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의 유래 (洪氏)

홍씨[洪氏]는 중국 돈황(감숙성 서북부에 위치한 오아시스 도시)의 공공씨[共工氏]후손이
원수를 피해 공자[共字]에다 수자[水字]를 붙여 처음으로 홍씨의 성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홍씨의 역사는 당나라 태종때 8학사의 한사람인 홍천하[洪天河]가 고구려 영류왕의
요청에 의해 고구려에 들어와 당나라 문화보급에 공헌하고, 삼한통합에 따라 신라에서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어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진 것이 시초가 된다.

홍씨의 본관은 문헌에 111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홍씨는 남양[南陽], 부림[缶林],
풍산[豊山], 홍주[洪州], 4본이 있는 것으로 전한다.

홍씨중에서도 대본[大本]으로 알려진 남양홍씨는 전혀 근원을 달리하는 두계통이 있는데,
고려 개국공신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는 당홍계[唐洪系]
고려 고종때 금오위 별장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토홍계[土洪系]이며
이두계통은 역사적으로 구분되어 왔다.
전체홍씨 인구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남양홍씨에서 8할이상이 당홍계로 추산된다.

그외 풍산홍씨는 고려 고종때 국학직학을 역임한 홍지경[洪之慶]을 시조로 하며,
역시 고려때 태조 왕건을 도와 익찬공신으로 해풍부원군에 봉해진 홍규[洪規]홍주홍씨
시조가 되었다.

한편 고려때 시중[侍中]을 지낸 홍란[洪鸞]의 계통인 부림홍씨는 남양(唐洪系)에서 분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홍씨는 특히 조선조에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하여 십대벌열[十代伐閱]로 손꼽혀
왔으며, 근대에 와서도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실학자와 각계의 선각자를 배출하여
명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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